파스타는 오늘날 이탈리아 요리의 상징이지만, 그 뿌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이탈리아 전통 음식이 아니라, 수천 년간 문화가 축적된 세계적인 요리입니다. 특히 파스타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은 바로 시칠리아(Sicilia)입니다.
파스타의 기원, 단순히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고대 로마의 '라가눔(laganum)'
파스타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고대 로마에서 유래했습니다.
기원전 1세기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삶는 음식을 언급했고, 이를 ‘라가눔(laganum)’이라 불렀습니다.
이 음식은 오늘날의 **라자냐(lasagna)**로 발전했으며, 당시에는 신선한 파스타의 형태였죠.
아랍 세계와 건조 파스타의 탄생
파스타의 큰 전환점은 9세기경 시칠리아에 도착한 아랍인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들은 밀 반죽을 가늘게 잘라 건조시켜 보관하는 기술을 시칠리아에 전파했고, 이는 오늘날 **스파게티(spaghetti)**와 유사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이 기술은 지중해의 뜨거운 기후와 만나 최적의 건조 조건을 제공했고, 이동 중에도 보관할 수 있는 식량으로 이상적이었습니다.
당시 문헌에 나오는 ‘itriyya’라는 단어는 아랍어로 국수를 뜻하며, 시칠리아 문서에 실제 등장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파스타를 가져왔다? 사실 아님
흔히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국수를 가져와 파스타가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19세기 미국의 마케팅 신화에 가깝습니다.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후반에 중국을 여행했고, 그가 남긴 『동방견문록』에서는 중국 국수 문화가 언급되긴 하지만,
그보다 수백 년 앞서 이미 시칠리아에서는 건조 파스타가 존재했습니다.
시칠리아, 유럽 식문화의 관문이 되다
토마토는 언제 유럽에 전해졌나?
토마토는 아메리카 대륙 원산 식물로, 16세기 콜럼버스 이후 신항로 개척 시기를 통해 스페인을 거쳐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에 전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독이 있다고 여겨 관상용으로만 사용되었고, 식재료로 본격 사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17세기 말~18세기에 접어들면서, 시칠리아에서는 토마토를 익혀 사용하는 방식이 퍼지며
‘파스타 + 토마토소스’ 조합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조합은 오늘날 이탈리아 요리의 상징이 되었죠.
감자 역시 신대륙에서
감자 또한 남아메리카 원산이며,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유럽으로 옮겨졌습니다.
시칠리아에서도 감자는 초기에는 약용 식물로 도입되었으며,
17세기 이후부터 농업 작물로 정착되면서 지중해식 식단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됩니다.
특히 시칠리아에서는 감자와 올리브 오일, 허브를 곁들인 전통적인 채소 요리가 발전했습니다.
파스타는 문명의 융합, 시칠리아는 그 중심
시칠리아는 역사적으로 그리스, 로마, 아랍, 노르만, 스페인 등 다양한 문명이 지나간 지중해의 중심지입니다.
그만큼 식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하며, 파스타뿐 아니라 토마토, 감자, 올리브유, 바질 등 오늘날 이탈리아 요리의 핵심이 이곳에서 만났습니다.
단순한 면 한 줄기가 품은 세계의 역사
오늘날의 파스타는 단지 이탈리아의 음식이 아닙니다.
고대 로마인의 식사, 아랍의 저장 기술, 아메리카의 농작물, 그리고 시칠리아의 기후와 입맛이 어우러진 수천 년의 세계사 한 그릇입니다.
우리가 포크에 돌돌 말아 먹는 그 면발은, 사실 수많은 문화와 사람들의 교류와 오해, 창조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다음에 파스타를 먹을 때, 이 긴 여정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Where Does Pasta Really Come from? History of | Sicily, Tomatoes, Potatoes, and Mediterranean Foo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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