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생활자로서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이 들어서도 끊임없이 창작을 이어가는 예술가들은 큰 영감을 줍니다. 오늘은 일본의 민예(Mingei) 운동을 대표하는 염색 예술가 유노키 사미로(Samiro Yunoki, 1922-2024)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하며, 그의 예술 여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민예 운동과의 운명적 만남
유노키 사미로는 192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1947년,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의 오하라 미술관에서 일하며 민예 운동의 거장 고에츠 야나기(Soetsu Yanagi)와 세리자와 케이스케(Keisuke Serizawa)를 만났고, 이는 그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세리자와의 스텐실 염색(카타조메, 型染) 작품인 달력에서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패턴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카타조메 기법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민예 운동은 일상 속에서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공예를 중시하는 철학으로, 유노키는 이 철학을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전통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감성을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다채로운 색에서 추상적 단색으로
유노키의 초기 작품은 화려한 색상과 생동감 넘치는 패턴이 특징입니다. 멕시코 장난감이나 해외 여행에서 받은 영감은 그의 작품에 유쾌한 생기와 자유로움을 불어넣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의 작품은 점차 추상적이고 단색에 가까운 스타일로 변화했는데, 이는 체코 조각가 즈비그니에프 세칼(Zbigniew Sekal)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후기 작품은 대형 추상 텍스타일로, 단순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형태와 색감이 돋보입니다. 특히 2023년까지 이어진 그의 창작 활동은 100세가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새로운 표현을 탐구하는 열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재발견하며 예술의 경계를 넓혀갔음을 말해줍니다.
다양한 매체로 확장된 창작
유노키는 염색뿐 아니라 판화, 동판화, 유리화, 그림책, 심지어 종이 마쉐 인형까지 다양한 매체를 탐구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일본뿐 아니라 프랑스 파리의 기메 미술관(2014-2015)과 니스 아시아 미술관 같은 국제 무대에서도 주목받았습니다. 또한, 알레시(Alessi)와의 협업으로 디자인한 "이츠모(Itsumo)" 식기 세트는 그의 패턴 디자인이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특히, 그의 종이 마쉐 인형은 진지한 예술 세계 속에서도 유머와 장난기를 잃지 않는 그의 태도를 잘 드러냅니다. 이는 그림생활자로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예술은 때로는 가볍고 유쾌한 마음으로 접근할 때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백세의 예술가, 끝없는 창작의 비결
유노키 사미로는 2024년, 10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쿄 여자미술대학(현 조시비 미술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하며 후배 예술가들을 양성했고, 1991년 은퇴 후에도 전시와 창작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넘어, 끊임없이 배우고 표현하려는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그의 말, “ワクワクしなきゃ、つまらない(설레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그의 예술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예술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창작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과 즐거움 그 자체임을 그는 몸소 증명했습니다. 그림생활자로서 나이 들며 예술을 계속하려는 이들에게, 유노키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늘 설레는 마음으로 창작에 임하라.”
그림생활자에게 주는 영감
유노키 사미로의 삶은 그림생활자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전통은 고정된 틀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의 출발점입니다. 그는 민예 운동의 뿌리를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색채와 형태로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둘째, 나이는 창작의 장벽이 아닙니다. 100세가 넘도록 새로운 기법과 매체를 탐구한 그의 열정은 우리에게 도전을 멈추지 말라고 말합니다. 셋째, 유머와 가벼움은 예술의 깊이를 더하는 요소입니다. 그의 종이 마쉐 인형처럼, 때로는 장난스러운 시도가 새로운 창작의 문을 열어줍니다.
유노키 사미로의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운 텍스타일이나 패턴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작품은 일상과 예술, 전통과 현대, 그리고 진지함과 유쾌함이 조화를 이루는 삶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생활자로서, 그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창작의 기쁨을 새롭게 발견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예술을 탐구할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Samiro Yunoki, the spirit of art that shines beyond the age of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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